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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사람보다 오래 버티는 사람이 늘고 있다

by 커브 2026. 1. 8.

현대 사회에서 ‘잘 산다’는 말은 점점 추상적인 표현이 되어가고 있다. 대신 많은 사람들이 목표로 삼는 것은 더 나아지는 삶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삶이다. 이 글은 왜 오늘날 건강과 삶의 기준이 ‘성취’가 아니라 ‘지속’으로 이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본다.

 

잘 사는 사람보다 오래 버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잘 사는 사람보다 오래 버티는 사람이 늘고 있다

 

‘잘 사는 삶’의 기준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과거의 건강 담론과 삶의 목표는 비교적 분명했다. 안정적인 직업, 점진적인 소득 증가,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잘 사는 삶의 핵심 조건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건강은 삶을 확장하기 위한 자원이었고, 개인의 노력은 더 나은 상태로 이동하는 데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기준은 점점 현실과 어긋나기 시작했다. 경제적 불확실성, 고용 구조의 변화, 주거 비용 상승, 사회적 안전망의 불안정성은 개인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 환경에서 ‘잘 산다’는 개념은 실현 가능한 목표라기보다, 유지하기 어려운 이상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건강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건강은 더 이상 삶을 확장하기 위한 조건이라기보다, 삶이 붕괴되지 않도록 지탱하는 최소한의 기반으로 인식된다. 많은 사람들이 “더 좋아지고 싶다”기보다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때 건강은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향상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소모를 최소화해야 할 자원이 된다. ‘잘 살기 위해 건강해야 한다’는 논리는 ‘버티기 위해 건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로 전환된다. 이는 개인의 태도 변화라기보다, 삶의 조건이 달라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버틴다’는 말이 일상의 언어가 된 사회

최근 일상 대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 중 하나는 “그냥 버티고 있다”는 말이다. 이 표현에는 특별한 성취도, 극적인 실패도 담겨 있지 않다. 다만 현재의 삶을 무너지지 않게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언어의 확산은 삶의 기준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버티는 삶의 특징은 에너지의 축적보다 소모 관리에 가깝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기보다는, 현재의 요구를 감당하는 데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건강은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다. 회복보다 유지, 향상보다 최소 손실이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건강 문제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보다, 만성적인 형태로 축적된다. 지속적인 피로, 집중력 저하, 수면의 질 저하, 소화 불편과 같은 증상은 일상에 스며들어 ‘정상’처럼 인식된다. 이는 건강이 무너졌다는 신호이기보다는, 버티는 삶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상태가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까지 버티고 있다. 문제는 이 버팀이 회복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버티는 삶은 일시적인 전략일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상태가 될 경우 건강을 지속적으로 잠식한다.

 

건강이 ‘성장의 조건’에서 ‘붕괴 방지 장치’로 바뀌었다

과거 건강 담론에서 건강은 더 많은 활동과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었다. 체력이 좋으면 더 일할 수 있고, 더 즐길 수 있으며,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건강은 그보다 훨씬 소극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건강 관리 방식에도 반영된다. 적극적인 자기 관리나 목표 중심의 건강 계획보다는, 증상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건강은 개선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 실패를 방지해야 할 영역이 된다.

이때 건강 문제는 명확한 질병으로 진단되기보다는 애매한 불편 상태로 지속된다. 이는 의료 시스템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지만, 명확한 진단보다는 생활 관리 권고를 받는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현재의 삶의 구조가 질병과 정상의 경계를 흐리고 있다는 신호다. 결국 ‘잘 사는 사람’보다 ‘오래 버티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말은 건강이 삶을 확장하는 자원에서 삶을 유지하는 장치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이 변화는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꿈꾸기보다,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건강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이해되고 있다. 잘 사는 사람보다 오래 버티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개인의 의지가 약해졌다는 증거가 아니라 삶의 구조가 얼마나 많은 소모를 요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건강을 다시 회복과 확장의 조건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개인의 관리 노력만큼이나 삶의 속도와 구조를 재검토하는 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