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대한 정보와 담론은 넘쳐나지만, 그 기준이 누구를 전제로 하고 있는지는 쉽게 질문되지 않는다. 정상 수치, 관리 가능성, 회복력 같은 개념들은 보편적인 기준처럼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삶의 조건을 가진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다. 이 글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건강 담론이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어떻게 배제되어 왔는지를 살펴본다.

건강 담론의 ‘기본값’은 항상 동일한 사람을 가정한다
현대의 건강 담론은 중립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상 범위, 권장 생활 습관, 표준적인 회복 시간은 객관적인 기준처럼 제시된다. 그러나 이 기준들이 실제로 전제하는 삶의 조건은 매우 구체적이다. 이 기준이 가정하는 사람은 비교적 안정적인 일상을 가진 사람이다. 일정한 수면 시간이 가능하고, 규칙적인 식사가 가능하며, 자신의 상태를 관리할 시간과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이다. 또한 장시간의 회복을 허용받을 수 있고, 아픔을 드러냈을 때 즉각적인 불이익을 받지 않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전제로 한다. 문제는 이 전제가 보편적인 것처럼 사용된다는 점이다. 건강 담론은 특정한 조건을 ‘기본값’으로 설정하면서도, 그 조건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처럼 말한다. 이때 기준에서 벗어나는 삶의 조건은 예외가 아니라, 개인의 관리 실패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건강 담론은 특정 집단의 삶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그 외의 상태를 설명해야 할 대상으로 만든다. 이는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언어라기보다, 정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언어로 작동할 위험을 내포한다.
기준에 맞지 않는 상태는 왜 문제가 되는가
건강 담론이 특정 기준을 중심으로 구성될 때, 그 기준에 맞지 않는 상태는 자연스럽게 문제로 분류된다. 피로가 오래 지속되는 상태, 회복이 더딘 상태, 쉽게 소진되는 상태는 관리가 부족한 결과처럼 해석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상태 자체보다 그 상태가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다. 즉, 불편함이 왜 발생했는지보다는 왜 정상 범위에 머물지 못했는지가 질문의 중심이 된다. 이는 건강 문제를 맥락이 아닌 결과 중심으로 해석하게 만든다. 특히 설명하기 어려운 상태일수록 이 문제는 심화된다. 진단명이 없는 불편함, 명확한 원인이 없는 소진은 담론 안에서 위치를 갖기 어렵다. 그 결과 이러한 상태는 개인의 취약성이나 회복력 부족으로 환원되기 쉽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건강을 말할수록 불편해지고, 취약함은 숨겨지며, “괜찮다”는 말이 반복된다. 기준에서 벗어난 상태는 말해질 수 없고, 말해지지 않는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 문제처럼 취급된다. 결국 건강 담론의 기준은 보호의 역할보다, 배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기준에 맞는 사람은 보이지 않게 통과하고, 맞지 않는 사람만이 설명을 요구받는다.
건강 담론을 다시 묻는다는 것의 의미
건강 담론이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묻는 일은, 건강을 부정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건강을 더 넓은 현실에 맞게 다시 정의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 질문은 건강을 개인의 관리 능력이나 성과로만 해석하는 방식에서 벗어나게 한다. 건강은 개인의 선택 이전에 조건의 영향을 받으며, 회복 가능성 역시 사회적 자원과 환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점을 다시 보게 만든다.
또한 이 질문은 정상이라는 개념을 재검토하게 한다. 정상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 조건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불편함, 취약함, 회복 중인 상태 역시 정상의 범주 안에서 논의될 수 있어야 한다. 건강 담론이 진정으로 확장되기 위해서는 가장 관리가 잘 되는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가장 설명되지 않던 상태, 가장 말하기 어려웠던 경험을 기준으로 삼을 때, 건강은 보호의 언어로 기능할 수 있다.
건강 담론은 중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특정한 삶의 조건을 기준으로 구성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들여온 건강의 기준은 모두를 위한 기준이 아니라, 일부의 조건을 보편화한 결과일 수 있다. 이 시리즈가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건강은 누구를 기준으로 이야기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많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아프지 않지만 건강하지 않은 상태, 말할 수 없는 취약함, 설명해야만 하는 불편함 속에 머물게 될 것이다. 건강을 다시 회복의 언어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준부터 다시 묻는 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