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대한 관심과 정보는 그 어느 때보다 많아졌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 상태를 말하는 일은 점점 더 조심스러워지고 있다. 아픔을 이야기하면 과하거나 예민하다는 반응을 마주하기 쉽고, 설명을 요구받는 상황도 잦다. 이 글은 왜 건강을 말할수록 더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지, 그 배경을 개인의 성향이 아닌 사회적 조건에서 살펴본다.

건강 담론의 확산이 곧 표현의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 건강은 일상의 주요 화제가 되었다. 운동, 식단, 수면, 정신 건강에 대한 정보는 쉽게 접할 수 있고, 건강을 관리하는 행위는 긍정적인 자기 관리로 평가된다. 겉으로 보기에 건강은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는 주제가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건강을 말하는 방식이 매우 제한적이다. 건강에 대한 이야기는 관리 성공담이나 극복 서사일 때 비교적 환영받는다. 반면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나 회복되지 않는 상태를 말할 경우, 반응은 미묘해진다. 왜 그런 상태가 되었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뒤따르기 쉽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건강을 말하는 것이 곧 평가를 감수하는 일이 된다.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는 순간, 그 상태의 정당성과 관리 여부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는 건강을 말하는 행위가 단순한 공유가 아니라, 일종의 자기 설명이 되어버렸음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건강 이야기를 피하거나 축소한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건강 담론이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표현의 공간은 오히려 좁아진 셈이다.
설명을 요구받는 순간, 불편함은 개인의 문제가 된다
건강을 말할 때 불편함이 커지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이야기가 곧바로 개인의 책임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프거나 불편하다고 말하면, 주변에서는 원인과 해결책을 묻는다. 이는 관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상태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왜 그렇게 됐어?”, “관리하면 나아질 수 있지 않아?”와 같은 질문은 건강 문제를 개인의 선택과 관리 능력의 결과로 해석하게 만든다. 이때 구조적 요인이나 환경적 조건은 쉽게 배제된다. 건강 상태는 설명해야 할 개인의 문제가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건강을 말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진다. 자신의 상태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면 오해를 살 수 있고, 설명을 시도하면 변명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특히 명확한 진단명이 없거나, 회복 경로가 불분명한 경우 이러한 불편함은 더욱 커진다. 설명할 수 없는 상태는 신뢰받기 어렵고, 말하는 순간 불필요한 판단의 대상이 된다. 건강을 말할수록 불편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건강을 말하지 않게 만드는 사회적 비용
건강을 말하기 어려운 환경은 개인에게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는 사회 전체의 건강 인식에도 영향을 준다. 불편함과 소모가 충분히 표현되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문제처럼 취급된다. 결과적으로 건강 문제는 드러난 일부만을 중심으로 논의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건강 문제가 늦게 발견되고, 개입 시점도 지연된다. 아픔을 말하지 못한 채 버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회복에는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이 비용은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또한 건강을 말하지 않는 문화는 ‘정상성’을 강화한다. 말해지지 않는 불편함은 정상의 범주 안에 묻히고, 정상은 점점 더 많은 소모를 포함하게 된다. 이는 건강의 기준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결국 건강을 말할수록 불편해지는 사회에서는 건강을 지키는 것보다 숨기는 것이 더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이는 건강 담론의 목적과 정반대의 결과다.
건강에 대한 정보와 관심이 늘어났음에도, 건강을 말하는 일이 더 불편해졌다는 사실은 중요한 신호다. 이는 개인이 예민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건강을 말하는 순간 책임과 평가가 따라오는 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관리의 언어뿐 아니라 불편함이 말해질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하다. 건강을 말할수록 불편해지는 사회는 아직 회복의 언어를 충분히 허용하지 못하고 있다.